1.04.2013

김어준





이상한 사내

이상한 사내가 있었다. 
털이 덥수룩하게 난 사내는 
꼭 수컷들의 짙은 냄새를 풍길 것만 같았다. 
씩씩했던 누군가를 좋아했던 
그 사내는 

그를 기억하기 위해 
검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. 




유쾌한 투쟁

매케한 연기로 뒤 덮였던 
87년 6월을 기억한다. 
투쟁은 치열했고 격정적이며 
자신의 온몸을 온전히 광장에 바쳐야만 했다. 

그가 말하던 씩씩한 사내가 
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고 난 후 

그 이상한 사내가 나타났다. 
그 사내는 작은 골방에 앉아 마이크를 잡았고 
우리 모두 나지막이 귀를 기울였을 때  
그는 어이 없게도 
"쫄지마 씨바" 라고 외쳤다. 

우리는 그 어이없는 유쾌함을 
유통하기 시작했다. 

사람들은 자꾸만 자꾸만 
새로운 라디오로 몰려들었다. 

어느새 우리는 온몸을 던져야 했던 
87년 광장의 추억을 잊은 채 
그의 웃음과 유쾌함을 통해
새롭게 투쟁하고 있었다. 

그 사내는 모두에게 
계속 쫄지 말라고 외쳐댔다.  




이상한 사내에게 

그 이상한 사내가 
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던 날 
난 오래 전 그의 목소리를 떠올렸다. 

"그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씩씩한 남자였다.
스스로에게 당당했고 같은 기준으로 세상을 상대했다.
난 그를 정치인이 아니라, 그렇게 한 사람의 남자로서, 진심으로 좋아했다."

우리 모두에게 묻는다. 
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적이 있냐고 
우리가 그런 사람을 가질 자격이 있냐고

그 씩씩한 사내가 떠나던 날 
난 그 사내를 단 한번도 칭찬하지 않았다는 걸 깨닳았고 
단 한번의 격려 조차 해보지 못했다는 걸 후회했다. 

이제 이상한 사내에게 말한다. 
당신은 당신이 말한 그 씩씩한 사내만큼 씩씩했고 
누구보다 우리 곁에 오래 있어달라고...

언제나 그의 헌신과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.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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